리처드 범브란트 수기(번역_ 지수원,영문학 박사, 남대구교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작가에 대하여

리처드 범브란트(Richard Wurmbrand) 목사는 공산 치하의 루마니아에서 감옥에 갇혀 고통 받으며 14년을 보낸 복음 전도자다. 그는 루마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며, 작가이며, 교육자이기도 하다. 루마니아에서 범브란트보다 더 널리 알려진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1945년 공산주의자들이 루마니아를 점령해서 교회를 자기들이 원하는 목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을 때, 리처드 범브란트는 즉시 억압받는 국민들과 침략자인 소련 군인들을 대상으로 효과적이고 힘 있게 지하 선교를 시작했다. 결국 그는 아내 사비나와 함께 1948년에 체포되었다. 그의 아내는 3년간 강제 노역에 시달렸으며, 범브란트는 독방에서 공산주의 고문자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3년을 보내야 했다. 3년 후 일반 감옥으로 옮겨져 5년을 더 갇혀 있었으나 여전히 고문은 계속되었다.

기독교 지도자로서의 그의 국제적인 위상 때문에 외국 대사관의 외교관들이 끊임없이 그의 안전에 대해 공산정부에 질의를 했는데, 공산정부는 그가 루마니아에서 탈출했다고 거짓말했다. 비밀경찰은, 풀려난 동료 죄수인 것처럼 가장한 사람들을 리처드 범브란트의 아내에게 보내어 감옥 묘지에서 남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거짓말을 시키기도 했다. 루마니아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은 범브란트가 사망했으므로 이제는 그에 대해서 잊어버리라는 통지도 받았다.

8년 후 그는 석방되어 출옥하자 즉시 지하교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59년, 그는 다시 체포되어 25년형을 선고받았다.

범브란트는 1964년 대사면 때 석방되었으며, 다시 지하 선교를 계속했다. 세 번째 투옥될 위험에 처하자, 노르웨이의 그리스도인들이 범브란트를 루마니아에서 구출하기 위해 공산 당국과 협상을 벌였다. 공산정부는 정치범들을 돈을 받고 팔아넘기고 있었다. 보통 죄수 한 명에 대한 “통상가격”은 1900불이었지만, 범브란트의 몸값은 일만 불이었다.

1966년 5월, 범브란트는 워싱턴에서 미국 상원 국내안전보장 소위원회(Internal Security Subcommittee)에서 증언했으며, 상의를 벗고 고문으로 전신에 생긴 열여덟 군데의 깊은 상처를 보여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의 신문에 실렸다.

1966년 9월, 그는 루마니아 공산정부가 그를 암살하기로 결정했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죽음의 위협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지하 교회의 목소리”라고 불린다. 또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그를 “살아있는 순교자” 혹은 “철의 장막의 바울”이라고 부른다.


리처드 범브란트의 간략한 구원간증/
한 무신론자가   그리스도를 발견하다


나는 종교가 없는 가정에서 자라났다. 어릴 때는 전혀 종교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성장했다. 14살이 되었을 때 확신에 찬 무신론자로 내 마음은 굳어 있었다. 이것은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을 보낸 결과였다. 태어나 한 살도 되기 전에 나는 고아가 되었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 동안에 나는 가난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열네 살이 되었을 때는 지금의 공산주의자들처럼 나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나는 무신론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내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에 대해 믿지 않았다기보다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인간의 마음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그런 생각 자체를 싫어했다. 나는 종교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성장했다.

그러나 나중에야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되는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내 인품이나 성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성품이 아주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나는 무신론자였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나를 항상 교회로 이끌고 있었다. 교회를 지나갈 때, 들어가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렇지만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교를 들었지만 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내가 복종해야만 하는 주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싫었다. 나는 내 그릇된 생각에 따라 하나님을 싫어했다.

그러나 이 우주의 중심 어딘가에 사랑이 넘치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주 행복했을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기쁨과 즐거움을 거의 모르고 자랐다. 나는 정말로 나를 향한 사랑이 넘치는 마음이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기를 갈망했다.

나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사랑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나를 매우 슬프게 했다. 한번은 내적인 갈등을 견디다 못해 어느 카톨릭 성당에 들어갔다. 나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고, 무슨 말인가 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나도 그들 옆에 무릎을 꿇고 그들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그대로 따라서 기도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고 있었다. “은혜가 풍성하신 성모 마리아여!” 나도 그들을 따라서 반복해서 성모 마리아를 불렀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것이 무척 슬펐다.

어느 날, 비록 나는 무신론자였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다음과 같이 기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님, 나는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당신이 계신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을 믿는 것은 내 의무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이 당신의 존재를 나에게 나타내는 것이 당신의 의무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무신론이 내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내가 이와 같은 내면적인 갈등을 겪고 있을 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루마니아 산중의 어느 마을에서 한 늙은 목수가 기도하고 있었다:

“내 하나님, 저는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저는 하늘나라에서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보상을 받고 싶습니다. 제 보상은 죽기 전에 유대인 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유대인 가운데서 태어나셨습니다. 저는 가난하고 늙었고 병들었습니다. 저는 유대인을 찾아 여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유대인이 없습니다. 당신이 한 사람을 우리 마을로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데 온 마음을 다 하겠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나를 그 마을로 이끌었다. 나는 그 마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었다. 루마니아에는 1200개의 마을이 있었지만, 나는 하고많은 마을 중에 그 마을에 들어섰다. 내가 유대인인 것을 알고는 그는 지금까지 어느 아름다운 아가씨도 받아보지 못한 열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는 내가 온 것이 자기가 기도한 결과라는 것을 알고는 나에게 읽어보라고 성경을 주었다. 나는 전에도 문화적인 관심을 따라 성경을 여러 번 읽어보았지만, 그가 나에게 준 성경을 읽을 때는 뭔가 전혀 달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그의 아내와 함께 여러 시간 기도했다. 그가 나에게 준 성경은 글로 쓰였다기보다 그의 기도에서 일어난 사랑의 불길로 쓰인 것이었다. 나는 그 성경을 거의 읽을 수가 없었다. 죄로 물든 나의 삶과 예수님의 삶을 비교하고, 나의 불경함과 미움으로 가득찬 마음을 주님의 사랑과 비교하면 눈물이 날 뿐이었다.

주님은 나를 자녀로 삼아주셨다. 곧 내 아내도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했다. 아내는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했고,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인도해 왔다. 그래서 새로운 루터 교회가 루마니아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치가 밀려왔다. 우리에게는 많은 고난이 닥쳤다. 루마니아에서 나치주의는 신교와 유대인들을 탄압하는 극단적인 정통보수의 성향을 띠었다.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기 전부터 나는 사역을 시작했으며, 실제적인 교회 설립자로서 교회 인도자 역할을 했다. 나는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아내는 여러 번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매를 맞기도 했으며, 나치 법정에 서기도 했다. 나치가 주는 고통도 컸지만, 뒤이어 공산주의자들이 가지고 올 고통에 비하면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내 아들 미하이(Mihai)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유대식 이름도 버려야 했다.

그러나 나치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은 신체적 고통은 견딜 수 있으며,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무서운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그들은 우리에게 비밀 전도의 기술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은 우리 앞에 다가온 더욱 큰 시련에 대한 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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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기쁜소식 · 2003년 11월호 · 통권212호 (매월 1일 발행) · 발행처 도서출판 기쁜소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