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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연합집회 세째날 오전말씀
199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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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2:13∼19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

"전쟁이 터져서 피난을 하려고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아이를 등에 업고 남쪽으로
내려오던 아주머니가 한숨을 돌리면서 등에 있는 아이를 더듬으니 빈포대기만 있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인데, 이제는 기저귀가방이니하는 모든 것들은 소용없게 된 것입니다.
건망증이 심한 어떤 남자가 우산을 가져가기만 하면 잊어버리고 오는데 하루는 부인의 간
곡한 부탁을 듣고 하루종일 내우산…내우산…하다가 전철을 타고 깜박 졸았다가 깨보니 내
릴 역이여서 `내우산`하고 우산은 챙겨서 내렸는데 집에 가서보니 하루종일 벌었던 돈이 든
돈가방을 두고 내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어떤 일에 마음을 빼앗기다보
면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왕이 무덤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주위가 마음에 안들어서 잣나무나 백향목 등의
좋은 나무를 심고 사자동상도 갖다놓고 아담한 정자도 건축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왕이
이곳을 와 보니 다 좋은데 무덤이 보기 싫어서 무덤을 파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돼 버린거지요. 사람들은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해봐야 하는데 뭔가
에 집착해서 생각도 해보지 않으므로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신앙생
활을 하면서도 신앙생활을 하기 바쁘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유월절하면 `양`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본문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양,소,비둘기들을 파는
것을 성전에서 쫓아내고 있습니다. 유월절의 참된 주인공은 누구겠습니까? 바로 예수님 자
신이십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하는 요한복음1장의 말씀이후에 2장에서의 말씀
입니다. 2장의 유월절의 양은 바로 1장의 하나님의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나타내시기 위함
인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아닌, 진짜가 아니 가짜, 그림자인 양, 소, 비둘기에
관심이 있으며 예수님에게는 관심이 없는 데, 예수님은 그것을 좀 나타내시려고 이러시는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나게 해줄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어린양이 눈앞에 있는데도
관심이 없고, 자기가 죄를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5장의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하면 먼저 내려가서 고침
을 얻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천사를, 고친 사람도 없는데 막
연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예수님에게는 관심도 없
습니다. 38년된 병자는 요한5장13절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못하니`
씀처럼 고침을 받은 사람도 예수님을 알지못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의 하시는 일
에는 관심이 없고, 천사에 관심이 있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바라고, 그분에게 초점을 두지
않는다. 이처럼 죄를 씻어줄 복음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가 씻으려고 열심히 기도,봉
사한다. 예수님은 말씀이시며, 말씀속에서 복음을 예수님을 찾아야하는데 엉뚱한데 가 있어
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죄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든 초점이 예수님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으
며 예수님에게 포인트가 맞춰져 있습니다. 마치 양목사님의 앨범에는 모든 사진에 양목사
님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모든 성경에는 예수님의 얼굴이 있습니다. 유월절하면 예수님이며
그 주인공을 찾아야하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애수님을 기다
리면서도 실제 복음을 전해줄 사람을 만나면 배척하면서, 여전히 자신이 죄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양과 소를 내어 쫓으시면 참된 제물되신 예수님을 발견하면 되는데, 문제
나 어려움에 빠져서 죄를 해결해주고, 우리 삶을 이끌어주실 예수은 잊어버리고 허우적거리
는 신앙을 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앞에 살았고, 마르다는 일이 많고 일이
보이고, 예수님은 안보이는 사람입니다. 마르다의 신앙은 피곤하며 원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씀을 전할까하면서 한주간 말씀을 전하는 속에 빠져있어서 집회를 마치면 마음이
허전하고 텅비는 것 같을때가 있습니다. 풍랑을 만나 노젓는 제자들은 풍랑을 보면서 노젓
는데 빠져있느니까 예수님이 보이지 않고 없는 양 여기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면
서도 슬픔,일,문제와 동행하는 것과 같이 유월절에 예수님에게는 관심이 없고 소,양에 관심
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2장에는 혼인잔치가 있는데, 세상에서는 신랑신부가 주인공이지만, 믿음안에서는
예수님이 초점에 되어야하는데 이곳에서는 신랑,신부,포도주가 초점이 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계신지 안계신지 관심이 없었는데, 문제가 생기니까 예수님이 드러나
고 초점이 옮겨졌습니다. 예수님이 안보이고 문제만 보인다면 진짜 중요한 것이 빠진 것이
다.
교회는 다녔는데, 피가 안발려 있다면, 죄가 안 씻겨졌다면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 삶이
다. 우리 눈에는 예수님이 항상 보이지는 않고, 마음에 예수님이 빠져있는 꺼꾸로하는 신앙
을 할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 3일을 목말랐다가 마라의 쓴물을 마셨는데, 하나님은 한 마른 나무
가지를 가리키셔다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광야의 마른 나무토막, 하나님은 그것을 인
생을 가리키는 쓴 물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고통과 슬픔의 인생인 쓴 물에 마른 나무토막
과 같은 예수님이 더 해질 때 단물로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나무토막
애 비유했습니까?  사람들은 `저게 어떻게 내 인생을 달게 할까? 저 나사렛 예수가, 저 목수가,
글을 배운적이 없는 저 사람이…`하면서 예수님을 나무토막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복을 받을려고 하며, 참된 복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배척하고 멀리하고 하챦게 여기는 것
입니다.
이사야 53장의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처럼  예수님은 사람이 멸시하기에 딱 좋은 모습입니
다. 요한복음1장10절의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
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하는 말씀처럼 세상은 그 참된 주인되신 예수님을 알아보니 못하
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항상 보이지 않고 문제가 생겨야 보이기 때문에 구원받아도 예수님
과 동행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사진을 확대해도 얼굴을 빼고 확대할 수는 없는 것처럼 우
리 삶속에 항상 예수님이 박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대신에 남편이, 자식이 들어
가니까 신앙이 안되는 것입니다. 내 슬픔 내인생은 잘려도 예수님이 빠지면 안되고 예수님
이 초점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이면 인생이 바뀌고 변화된 삶
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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